2011. 2. 10. ~ 2011. 2. 16. SIQ의 팔도유람 - 내... 내일로로 가버렷!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제목에도 있지만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20일쯤 전의 일로, 내일로 타고 경기,강원,충북,충남,전북,전남,경북,경남 8도와 몇 개의 광역시를 돌아다닌 이야기이다. 근데 왜 지금 올리냐고? 서울에서 며칠 있으면서 마작도 치고 이곳저곳 다니다 보니까 쓸 시간도 잘 안 났고, 또 쓰는 데 시간도 오래 걸려서 이렇게 된 것이다.

0

계절학기가 끝나고 집에 내려가면, 그 내려가 있는 기간이 한 달이 채 안 되기 때문에 그 동안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통은 그 동안 작룡문 등을 하면서 적당히 보내다가 학교로 귀환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내일로라는 좋은 티켓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2월 10일부터 16일까지 내일로 여행을 떠났다.

일단 여행의 큰 밑그림은 아래와 같았다.

"7일 동안 안 타 본 철도 노선을 최대한 타 보자!"

그래서 안 타 본 철도 노선들 중 탈 만한 것들을 대충 정리해 보니 아래와 같았다.

중앙선
장항선
경전선
호남선(송정리 이남)
경부선(대전 이남)
동해남부선(경주 이남)
경춘선
경의선
경원선

그리고 여기에 평소 가 보고 싶어했던 곳들을 추가했다. 아래와 같았다.

충청남도 북서부 : 아산, 서산, 당진 일원
강원도 동부 : 강릉, 양양, 속초, 고성 일원

이렇게 해서 여행의 큰 밑그림이 그려진 것이 2월 3일이었다. 집에서 여천역까지는 걸어서 대략 10분 거리였으니, 당장 가서 내일로 티켓을 사려 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내일로 티켓은 설 대수송기간에 사용만 할 수 없을 줄 알았고, 사용기간에 설 대수송기간이 끼어 있지 않으면 언제든지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직접 가서 사려고 하니 2월 6일까지는 안 되고, 7일부터 살 수 있다더라. 이런 식으로 한번 허탕을 치고 결국 2월 7일에 내일로 티켓을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때부터 여행을 준비했냐고? 그게 아니고 다른 잉여짓을 했다. 그 결과가 블로그에 2월 7일에서 10일 사이에 올라온 글들이다. 이렇게 잉여잉여거리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본격적으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 게 2월 9일 밤이다. 코레일 홈페이지에 들어가 기차 시간표를 확인하니 이 전부를 가는 것은 무리라는 결론이 나왔다. 결국 시간이 잘 맞지 않는 몇 군데를 뺀 것이 아래와 같은 여행계획이다.

2월 10일
집에서 아침 먹고 여천역 출발
순천역에서 내려서 순천발 서광주경유 익산행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순천보다 서쪽의 경전선을 구경
익산에서 점심 먹고 장항경유 용산행 새마을호 열차를 타고 장항선 구경, 온양온천역에서 하차
온양온천역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삽교호관광지까지 이동
거기서 좀더 구경하다가 시외버스를 타고 당진까지 이동
당진에서 저녁 먹고 1박

2월 11일
당진에서 아침 먹고 시내버스와 시외버스를 적당히 이용, 현대제철 근방과 간월호 근방, 대산석유화학단지 근방 등을 구경하고 홍성, 예산 중 한 곳에서 1박. 밥은 적당히.

2월 12일
홍성이나 예산에서 천안 가는 열차 타고 천안까지 간 뒤
천안에서 조치원 가는 열차로 갈아타고 조치원까지 간 뒤
조치원에서 제천행 열차를 타고 제천까지 간 뒤
제천에서 강릉행 열차를 타고 강릉까지 가서 강릉에서 1박. 아침은 출발지에서, 점심과 저녁은 기차에서.

2월 13일
강릉에서 아침 먹고 시외버스를 타든 뭘 타든 해서 쭉 위로 올라가서 강릉, 양양, 속초, 고성 일원을 돌아보고 통일전망대까지 다녀온다. 점심은 적당히 먹던지 거르던지 하고 저녁은 강릉에서 먹고 강릉에서 다시 1박

2월 14일
아침 일찍 영주행 열차 타고 영주까지 간 뒤 영주에서 경주행 기차로 갈아타서 경주까지 가고 경주에서 적당히 포항으로 간다. 학교에서 적당히 사람 모아 마작 치고 1박.

2월 15일
아침에 경주행 열차 타고 경주까지 간 뒤 경주에서 부전행 열차 타고 부전까지 간 뒤 부전에서 순천행 열차 타고 순천까지 간다.
그 뒤는 어떻게든 여천까지 간다. 집에서 1박.

2월 16일
집에서 아침 먹고 용산행 열차를 타고 서울까지 올라간다. 이후는 2월 18일 ~ 19일 일정과 잘 이어지게만 하면 된다.

보다시피 2월 10일과 12일만 굉장히 구체적임을 알 수 있다. 왜냐면 이 두 날은 이동하는 것이 주가 되는 날이기도 하고, 갈아탈 것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14, 15, 16일도 꽤 구체적이지만 앞의 두 날에 비할 바가 못 되고, 11, 13일은 기차를 이용하는 날이 아니기 때문에 저렇게 구체적으로 짜기는 힘들다. 그리고 10일의 버스는 시간이 좀 남아서 미리 시내버스라던가 하는 것들을 알아보았다.

또한 여행의 대원칙을 잡았다.

1) 계획은 유연하게.
2) 여행을 속행할 수 없을 정도의 일이 있으면 서울이나 집(여수) 또는 학교(포항) 중 가까운 곳으로 도망친다.
3) 여행은 최대한 낮에만 다니도록 노력한다. 그래야 사진을 찍지!

이렇게 해서 결국 2월 10일이 다가왔다.

 

1

드디어 2월 10일. 배낭 하나에 옷 등을 넣고, 갤s와 충전기, 지갑을 챙긴 뒤 옷을 따뜻하게 입고 집을 나섰다. 드디어 6시 45분에 여천역을 출발했다.

여천역에서 순천역까지는 별로 볼 것이 없었다. 아직 날이 어둡기도 했고, 날이 밝았어도 그 구간은 너무 익숙했기 때문에 딱히 새로 볼 것이 없었을 것이다. 아, 딱 하나 볼 만한 게 있었는데, 여수 - 순천 구간의 전라선 복선화 공사가 꽤 진전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해서 순천역에 도착해서 대략 30분 동안 대합실에서 잉여거리니 순천발 서광주경유 익산행 열차를 탈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경전선을 구경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단순히 익산까지 가는 것만을 생각한다면, 적어도 광주까지는 고속버스를 타는 편이 훨씬 시간이 덜 걸린다. 하지만 시간 적게 걸리고 익산에 가려면 내가 그쪽 열차를 안 타고 그냥 안 갈아타고 익산까지 갈 수 있지 않은가. 그 열차를 탄 이유는 경전선을 구경한다는 이유 하나였다.

어쨌거나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경전선에 들어서니, 새로운 길들이 보이더라. 얼마 안 가니 벌교읍이 보였다.

한때 인구가 4만명을 넘을 정도로 큰 읍이었으나, 지금은 인구를 순천에 빨리고 광주에 빨리고 해서 인구가 1만 5천명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쪽은 그래도 약간 나은 것이, 밑의 고흥군에 있는 도양읍(녹동항이 있는 곳. 녹동이라고 하면 알 사람이 더 많다.)과 비교해 보자. 한때는 둘 다 군내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지역이었지만, 지금의 도양읍은 군내에서 인구가 가장 많지 않다.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으로 고흥읍에 수백명 차이로 밀린 것으로 알고 있다. 반면 벌교읍은 군내의 다른 인구밀집지역인 보성읍이 인구 1만명도 안 될 정도로 심하게 안습이라 그래도 군내 최대의 인구밀집지역이라는 타이틀은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거 써 놓고 보니 둘 다 안습이라서 그저 한숨만 나온다.

처음에 여천역에서 출발할 때는 얼음 같은 것은 없었으나, 슬슬 보성을 지나 화순으로 가는 길목에서 물이 언 것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 눈이 다 안 녹은 건가.

그 뒤는 화순이다. 이쪽은 많이 말할 것 없다. 화순은 화순읍 빼고는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다. 군내 인구의 60% 이상을 화순읍이 차지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이곳은 사실상 광주의 위성도시이기 때문이다. 화순읍 동쪽에는 광덕지구라는 곳이 있는데, 1990년대 후반에 이곳에 7000여 가구가 입주하면서 1995년에 2만 5천명 선이던 읍의 인구가 2000년에 4만 2천명 선으로 늘었다. 그리고 늘었다 줄었다 하면서 지금도 그 정도 인구를 유지하고 있다. 사실 여기서 신기한 건, 나주시의 읍, 면 지역을 뺀 동 지역의 인구는 4만명이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나주시내보다 화순읍내가 더 크다!

이런 식으로 해서 광주를 거쳐서 호남선을 타고 올라갔다. 정읍, 김제 등을 거쳐서 익산까지 가는데, 이 길은 너무 익숙해서 사진도 안 찍었다. 전라선보다 익숙한 건 아니지만, 이쪽도 나주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대전에 올라갈 일이 많아서 많이 타 본 곳이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어떻게든 익산에 도착해서 역에서 점심을 먹고, 장항선을 타기 위해 장항경유 용산행 열차를 탔다. 이쪽 노선도 처음 타 보는 것이지만, 사실 충남 서해안 쪽은 한번 간 적이 있다. 그리고 여기를 굳이 다시 가려는 이유가 있었다.

때는 2002년,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강화도와 서울, 에버랜드 쪽으로 수학여행을 갔는데, 이 때 급하게 여행지 하나가 추가되었다. 그것이 바로 서해대교인데, 그 때문에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정읍에서 빠져나와서 고창까지 간 뒤에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계속 올라갔다. 대략 서산쯤 갔을까, 그 당시 담임선생님이 모두들 차창 밖을 보라고 했다. 거기에는 굉장히 아름다운 초원이 펼쳐져 있었고, 날이 맑았기 때문에 굉장히 보기 좋았다. 지금 잘 기억나지 않지만 무슨 목장이라고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구제역 크리 때문에 이런 곳은 돈 많이 써도 갈 수 있을 리 만무하잖아? 안될거야 아마. 에잇, 5월쯤이나 구제역 잠잠해지면 혼자 가 보던가 해야지.

아무튼 이런 식으로 이 충남 북서부 지역을 꼭 한번 다시 가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저런 목장 말고도 간척지도 꽤 많고, 기본적으로 예당평야가 있는 평야지대라 크고 아름다운 초원이 있을 확률이 다른 데보다 약간 높기 때문이다.

잡설은 여기서 마치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조금 가니까 멀리 군산이 보이고,


금강하구둑이 보였다. 직접 사진으로 찍는 건 처음이다.

금강하구둑을 지나서 장항, 서천, 웅천을 거치니 대천역이 나왔다. 대천이란 보령시의 동 지역이 동으로 나누어지지 않았을 때와 시 승격 후 나머지 읍, 면 지역과 따로 떨어져 있었을 때의 이름으로, 그 때는 각각 보령군 대천읍, 대천시였지만 지금은 통합이 된 상태이다. 인구는 지속적으로 조금씩 줄고 있어서, 읍면 지역을 뺀 보령시내의 인구는 대략 5만명 근방.

아무튼 군산 이후로 장항선에서 처음으로 도시다운 도시를 보는 듯하다. 대천해수욕장 역시 보령의 동 지역에 있다는데, 기차 타고 가면서는 안 보이더라. 그나마 이 보령 쪽이 바다에 제일 가까웠다.

이제 보령 이후로는 육지로 계속 들어가기 시작하여 홍성이 나왔다. 홍성과 예산은 충남도청 신도시인 내포신도시가 들어설 지역이지만, 내포신도시는 기차에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홍성역이 있는 홍성읍은 보였다.

계속 지나가다 보니 이제 평야지대로 들어섰다. 슬슬 예산으로 들어서니 예산읍까지 볼 수 있었다.

이쪽의 홍성과 예산은 군 지역이지만 꽤나 흥미로운 곳으로, 그 중심지의 인구가 어느 정도 된다는 특징이 있다. 홍성읍의 인구가 대략 4만명, 예산읍의 인구가 대략 3만 7천명으로 완전한 시골이라고 보기에는 좀 뭐한 느낌이 있는 곳들이다. 이렇게 군청소재지의 인구가 어느 정도 많은 것은 충청남도내 많은 군들이 가지는 특징인데,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시승격 요건을 달성한 당진군은 당진읍의 인구가 5만명을 넘었다. 그리고 예전부터 철도교통으로 약간 흥했던 연기군의 군청소재지 조치원읍의 인구 역시 4만 명을 넘어간다. 이외에 부여읍과 태안읍, 금산읍의 인구도 2만명은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게 왜 특이한 거냐면 생각해 보자. 충청남도의 군은 총 9개인데, 이 중 서천과 청양을 뺀 7개 군이 군청 소재지 인구가 2만명을 넘는다. 전남에는 17개 군이 있는데 이 중 군청소재지의 인구가 3만명을 넘는 곳은 화순, 2만명을 넘는 곳이면 해남까지 들어간다. 전남은 이 정도로 심각하지만 다른 곳도 이렇게까지 군청소재지가 큰 곳은 없다.

또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 이곳은 이회창 지역구. 사실 이건 별로 안 중요하다.

예산을 지나 계속 가니까 도고온천도 보이고

조금 더 가니 드디어 이 날 기차여행의 끝, 온양온천역에 도착했다. 이제 여기서 600번 버스를 타고 삽교호관광지까지 가면 되었다. 아산에서 삽교호관광지까지 가려면 삽교천방조제를 거쳐야 하는데, 내가 바로 이걸 노린 것이다. 크고 아름다운 호수와 바다를 볼 수 있지 않은가. 역시 미리 알아본 대로 버스는 삽교천방조제를 거쳐갔고, 사진을 많이 찍었다. 위는 삽교호 쪽이요, 아래는 바다 쪽이다.


삽교호관광지에 도착하니, 바로 바다가 보이는 게 기분이 좋았다. 멀리 서해대교도 보였다. 앞서 말한 초등학교 수학여행 때 한번 가본 것 이후로는 처음 보는 서해대교다. 내가 서해대교에 갈 때만 해도 서해대교는 총연장 7310m로 대한민국에서 제일 긴 다리였지만, 얼마 안 가 부산에 총연장 7420m짜리 광안대교가 생기고 최근에 서해대교와 광안대교를 간단히 쳐바르는 인천대교가 생기고 거가대교라는 특이한 것도 생겨서 이제는 그리 큰 충격이 오지 않는 다리이다. 즉시 사진을 찍었다. 흐리게 보인다.

함상공원이라는 것도 있었고 하지만 빨리 어떻게든 당진에 도착해서 숙소를 잡아야 했기 때문에 삽교천터미널에서 당진행 시외버스표를 하나 끊어서 당진까지 갔다. 그리고 터미널 내의 식당에서 적당히 저녁을 먹은 뒤 주변 찜질방을 찾아가서 1박을 했다. 다행히 찜질방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는데, 이것이 다 평소에 봐 둔 지도로 당진읍내의 대략적 구조를 알고 잇었던 것 + 갤s 지도의 힘이라고 하겠다. 그래 봤자 당진종합버스터미널은 개발된지 얼마 안 된 외곽에 있으니 예전부터 있었던 읍내 쪽을 아예 가로지르는 일은 없었지만. 이걸로 2월 10일은 끝.


2

2월 11일.

찜질방에서 한숨 자고 나와서 다시 당진종합버스터미널로 돌아가야 어떻게든 현대제철 근방도 가 보고 서산도 들르고 할 것이 아닌가. 그래서 다시 적당히 길을 찾아 당진종합버스터미널로 가는데, 여기저기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더라.

아마 탑동 근처일 것이다. 현대제철을 비롯한 제철공업이 당진에서 제대로 흥하니 당진이 이렇게 발전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곧 시승격도 된다니 장족의 발전이다.

어쨌거나 당진종합버스터미널에서 적당히 시내버스를 타고 현대제철을 구경하기로 했다. 적당히 기다리고 나니 드디어 현대제철 당진공장이 나와서 몇 번 사진을 찍었다. 원하는 바를 이루긴 이루었구나.


그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갔다가 다시 당진종합버스터미널로 왔다. 그 다음에 서산행 시외버스를 타고 당진을 떠나 서산으로 갔다. 서산시내에는 소유주가 유치권을 행사하는 건물들이 많더라. 이런 것이 엔하위키에서 말하는 무한성들인가. 하기야 그런 것은 어딜 가나 조금씩 보이지. 강남 테헤란로에도 하나 있을 정도이니 말 다 한 거다.

서산에 도착하니 대략 12시 20분이다. 계획대로 시내버스로 간월도 간척지와 대산석유화학단지를 모두 가려고 하면 시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하나만 가기로 했는데, 그 둘 중에서 결국 선택된 것이 간월도 간척지이다. 1시 10분쯤에 버스가 와서 타고 주변을 계속 구경했다. 갤s로 사진을 찍는 소리가 너무 컸던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내가 관광객인 줄은 다 알더라. 종점에서 내리니 어디로 가면 경치가 좋은지까지 다 알려 주더라. 그래서 알려 준 대로 가서 적당히 사진을 찍었다.

간척지는 갯벌을 없앤다. 그것이 간척된 곳과 그렇지 않은 곳 사이에 극명한 차이를 생기게 했다. 갯벌로 남는 쪽이 좋은지 간척을 하는 쪽이 좋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거나 여길 간척한 현대는 돈 많이 벌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여길 간척할 때 썼던 공법이 물막이 공사에서 유조선을 가지고 물을 막는 그 유명한 정주영 공법이었던가.

간월호도 보였다. 얼음까지 얼어 있었다. 이 때는 확실히 추웠다. 그래도 여기는 날도 맑고 눈도 안 왔다. 이쯤 되면 좋은 날씨였다.

간월호와 천수만을 가르는 방조제를 좀더 가까이에서 찍을 수 있었다. 이 방조제 건너편이 홍성이다.


그리고 여기는 관광지라고 한다지만, 개발이 너무 안 되어 있다. 이런 좋은 곳이 있으면 간판하고 화장실만 세워 두지 말고 좀더 좋게 꾸밀 수도 있을 텐데...... 하지만 돈이 있어야 하지요.

분명히 대산석유화학단지 쪽도 사진 찍을 곳이 많을 것 같은데, 시내버스로만 다닌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결국 가지 못했다.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서산터미널에 오니 4시 20분이었기 때문이다. 이래서 여행을 다닐 때는 자기 차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제한 없이 마음껏 다닐 수 있으니까 말이다.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멀리서 본 서산시의 풍경도 하나 얻었다.

터미널에 도착해서 이제 홍성으로 갈까 예산으로 갈까 천안으로 갈까 생각해 보았는데, 갑자기 다른 생각이 하나 났다. 대전에는 지인분이 살고 있었고, 조치원을 거쳐 제천까지 가는 열차는 대전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2월 12일에 기차를 두번 갈아타는 일을 없앨 수 있고, 또 아침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이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출발할 수 있다. 그래서 홍성이나 예산 중 하나에서 자려는 계획을 깨고 지인분께 연락한 뒤 서산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대전으로 가기로 했다. 사실 이렇게 바뀐 계획으로 이점이 하나 더 생겼는데, 얼마 전에 개통된 당진-대전간 고속도로를 타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새로운 계획은 실행되어 당진-대전간 고속도로를 타고

예당지를 지나서

대전에 도착해서 반석역 근처에서 저녁 맛있게 얻어먹고 1박. 삼겹살에 막창이라니! 좋구나!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이 때 TV를 보니까 뭐? 12일에 갈 강원도 동부에 눈이 쌓일 대로 쌓여서 도로운행에 차질이 있다고? 이 때 나머지 여행을 포기할까 하고 잠시 생각했지만, 철도는 안전하잖아! 어떻게든 갈 수 있을 거란 말이다! 그래서 이대로 강행돌파하기로 하고 잠들었다.


3

2월 12일.

아침에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반석역에서 대전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간 뒤 대전발 제천행 열차를 탔다.

좀 가다 보니 조치원이 보였다. 읍 승격은 굉장히 빨리 되었지만 그 뒤로 발전이 더뎌서 아직까지도 읍이다. 세종시가 가까이에 생긴다는데, 이 세종시가 조치원읍에 어떠한 영향을 줄지는 잘 모르겠다.

충청북도 초입에 들어가니 나의 눈을 끄는 게 하나 있었으니......

ㅇㅅ! ㅇㅅ!
저놈의 ㅇㅅ이 호남고속선이 분기되는 역으로 선정되어서 전라도 쪽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데 길을 많이 돌아가게 된다. 천안아산역에서 분기되었어야 하는데...... 그건 그렇고 오송도 뭔가 많이 발전된 듯하구나. 아파트 같은 것도 많이 지어져 있으니......

오송을 지나서 청주를 거쳐 증평으로 갔다. 증평역은 꽤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증평군은 몇 년 전에 새로 생긴 기초자치단체이다. 원래는 괴산군의 일부였으나, 문제는 괴산 쪽과 증평 쪽은 생활권 자체가 달랐다는 것이다. 증평읍은 인구 3만 명 정도의 적당한 크기의 읍으로, 한때 증평시 승격까지 노렸지만 청주에 가로막혀 발전이 더뎌서 실패. 하지만 결국 구 청안군의 일부인 도안면과 같이 증평군이 되었다. 그리고 7만 명이 넘던 괴산군의 인구는 반토막이 났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충주를 거쳐

제천역에 도착...... 하기 직전에 기차에서 방송이 나왔다. 강원도 동부의 폭설로 오후 2시쯤에 출발하는 강릉행 기차가 태백까지만 간다고? 천하의 기차가 눈 때문에 운행을 못 해? 이대로라면 태백에서 1박을 하거나, 최악의 상황에는 이대로 여행을 마쳐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일단 기차에서 내려서 역 직원을 하나 잡고 타려는 강릉행 기차로 강릉까지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았다. 답은 이랬다.

"어떻게든 강릉까지 가긴 간다는데요......"

올레! 눈이 쌓여서 몇 시간이 걸리든, 일단 강릉으로 가고 보자!

이제 제천부터 영월, 정선, 태백 쪽은 광산들이 많은 쪽이다. 제천은 대학교 들어가기 전에 과 MT 건으로 한번 가 본 적 있으나, 박달재 휴양림으로 직행했기 때문에 제천에서 더욱 동쪽으로 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내가 앞서 갔던 서산, 당진 쪽과 강릉행 열차를 타고 가는 제천, 영월, 정선, 태백, 삼척, 동해 등은 공통점이 있는데, 이들 모두를 38번 국도가 지난다는 점이다. 38번 국도는 거의 다 4차선이지만 아직 태백에서 삼척 내려가는 구간이 2차선이므로, 돈을 쳐발라서 다리 놓아가며 공사하고 있는 그 구간이 완성되고 내가 운전면허를 따면 꼭 38번 국도 횡단을 해 봐야지. 이런 식으로 38번 국도가 지난다.

좀더 들어가니 영월인데, 상동 쪽은 몰라도 영월읍은 이쪽 읍 중에서는 드물게 인구가 2만 명이 넘는다. 사진에서도 볼 수 있지만, 영월쯤 가니까 슬슬 눈이 어느 정도 쌓이기 시작했고, 더 들어가니 높은 산들도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지대가 지대인지라 협곡도 아름답기가 2k+1이다.

그렇게 계속 가니 영월을 지나 정선이 나왔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탄광 지대...... 라고는 하지만, 사실 도박지대가 더 맞겠다. 강원랜드가 생긴 이후로 이쪽은 온통 호텔에 전당포에 전당주차장 일색이다.


그리하여 사북역에 도착. 탄광에서 쓰이는 열차 하나가 전시되어 있다.

여기에 동원이라고 쓰인 것은 1980년 사북사태의 그 동원탄좌 맞다. 한때 국내 최대의 민영 탄광기업이었으나 석탄으로 돈 벌기가 영 좋지 못하자 외국으로 나가서 각종 에너지 사업에 뛰어들었는데, 사업 여건이 안 좋아지면서 지금은 뭘 하고 있냐면 모래 채취하고 있다. 한때 방계 기업도 몇 개씩 가지고 있던 동원탄좌의 현재 모습은 초라하다. 동원탄좌가 흥하고 1980년에 사북사태가 일어날 때만 해도 사북읍의 인구는 5만 명, 그 후 사북읍이 사북읍과 고한읍으로 나뉘어졌을 때는 사북읍이 2만여 명, 고한읍이 3만여 명으로 합해서 5만 5천명 근방까지 인구가 늘었지만 탄광들이 하나둘 문을 닫으면서 사북은 태백보다 더 큰 타격을 받았다. 결국 지금은 사북, 고한 합쳐서 인구가 만 명도 안 된다.

강원랜드가 있는 고한 역시 그 상황은 사북과 마찬가지이다. 여기도 똑같이 숙박시설들과 전당포 일색이다. 하나 다른 게 있다면 사북에는 강원랜드가 없고, 고한에는 강원랜드가 있다는 점이지만, 원래 둘 다 사북읍이었는데 이걸 구분할 필요가 있나?

그렇게 정선군을 빠져나오니 이제 태백이다. 기차는 올라갈 대로 올라가서 이제 대한민국에서 제일 높은 역, 추전역에 다다랐다. 아래와 같이 사진을 찍었지만, '대한민국에서 제일 높은 역' 간판과 '추전' 간판이 둘 다 절묘하게 잘려 있다. 그래도 한자가 온전히 나와 있고 '추전역쉼터'라는 팻말이 온전히 나와서 다행이다.

태백은 눈으로 덮여 있었다. 태백시는 애당초 삼척군의 일부였던 장성읍이 장성읍, 황지읍으로 나뉘었다가 이렇게 나뉜 장성읍, 황지읍이 1981년에 다시 합쳐져서 생긴 시였으므로, 전 지역이 동으로 나뉘어 있다. 태백시의 인구는 5만 명 안팎으로, 시 지역만이 아닌 전체 읍, 면 지역을 다 합친 인구로 비교해 보면 태백은 국내에서 두 번째로 작은 시이다. 제일 작은 시는 인구 4만 명 정도의 계룡시이지만 여기는 인구 3만 명을 찍고 시 승격을 한 특이한 경우다. 물론 동 지역만 뗀 도시 지역 인구를 따지면 태백시가 꼴찌가 아니다. 동 지역만 떼 놓고 보면 앞에 언급한 나주시라던가 아직 언급 안 한 삼척시 등이 벌써 태백시 아래다.


일단 이야기를 꺼낸 참에 이쪽 행정구역의 변화에 대해서 좀 언급해 두자. 지금이야 삼척시는 인구 7만 명 정도의 작은 시지만, 원래의 삼척군은 인구 30만 명에 육박하는 거대한 곳이었다. 원래의 삼척군은 지금의 태백시 전체가 되는 장성읍, 황지읍과 지금의 동해시 일부가 되는 북평읍을 포함하고 있었고, 1980년쯤에 장성읍, 황지읍을 합치면 인구가 11만 명 이상, 북평읍은 인구 4만 명 안팎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인구 1만 5천 명도 안 되는 도계읍은 그 때 인구 4만 명까지 찍었다. 삼척읍의 인구는 5만 명 안팎이었다. 그 후 북평읍이 묵호읍과 합쳐서 동해시가 되고, 앞서 언급한 대로 태백시가 빠져나가고, 삼척읍은 삼척시가 되고, 나머지는 삼척군이 되었는데 탄광이 하나둘 망하기 시작하면서 도계읍과 태백시가 망하고 삼척시도 인구가 줄어서 1990년에 삼척시의 인구는 이미 시 승격 요건인 5만 명의 아래로 내려가 4만 명 안팎을 찍고 있었다. 그 뒤, 삼척시와 삼척군이 통합해서 도농복합 삼척시가 된 후 삼척시의 동 지역 인구와 읍면 지역 인구는 비슷하다고 하니 구 삼척읍 지역의 인구는 대략 3만 5천명에서 4만 명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하여간 광업과 관계없는 곳일수록 인구가 적게 줄고, 광업과 관계가 많아도 적당한 중심지가 되면 인구가 비교적 적게 주나 보다.

우여곡절 끝에 태백역에 다다르니 사람들이 많이 내렸다. 열차카페에서 서서 다니는 상황을 벗어나서 적당한 자리에 앉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쯤 오니 눈이 굉장히 많이 쌓여서, 차가 있으나 차는 안 보이고 그냥 눈만 보이더라.

그렇게 해서 통리역에 도착했다. 이제 통리역과 도계역은 고도가 400m 정도 차이난다는데, 가기 전에 들은 말에 의하면 이 협곡이 굉장히 볼 만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말은 사실이었다.


계속해서 길을 돌아 내려갔다. 내려가고 또 내려갔다. 그렇게 계속 내려가다 보니 드디어 기대했던 것이 나왔다. 갑자기 방송이 나왔다. 잠시 후 스위치백 구간에 진입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나타내는지는 모르겠지만 스위치백 구간에 가기 전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그 근방에서 사진을 하나 더 찍었는데, 아무래도 이게 스위치백 구간인 듯하다.

잠시 후 열차가 완전히 멈추었다. 약 4분간 스위치백 구간에 있겠다는데, 5분은 멈춰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열차가 뒤로 가기 시작했다. 스위치백 구간을 처음 타 보는 순간이었다.

그러다 보니 열차는 도계역에 도착했다. 이쪽도 탄광으로 흥했다가 탄광이 망하자 망한 곳이다. 도계역 근방에는 이런 것들이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제대로 된 파워 지연운행이 시작되었다! 도계역에 도착하더니 다른 열차 먼저 보낸다고 10분을 정차한단다. 10분이라면 적당히 돌아다니기 딱 좋은 시간 아닌가.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다들 이러고 있다. 이 정도 되니 눈이 어느 정도 내렸냐면 아래와 같이 내렸다.

대략 40cm 정도 될까? 하지만 앞으로 벌어질 헬게이트에 비하면 이것은 장난이지!

눈은 동쪽으로 가면 갈수록 더욱 많이 쌓였다. 도계역을 지나 계속해서 협곡을 내려가면서 슬슬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으나, 아직 사진은 찍을 만했다. 나무에는 눈이 쌓여서 상당히 아름답게 되어 있었다.

그렇게 계속 기차가 달리다 보니 어느 사이에 동해에 도착했다. 공단이 어느 정도 있고 항구도 있는 이쪽은 구 북평읍 지역이다. 공단이나 항구 쪽 찍은 사진은 잘 못 찍어서 여기에 올릴 만한 게 아니더라. 그냥 주거지역으로 만족하자.


그리고 이쪽에 동해역이 있다. 여기서도 꽤 정차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쯤 되니 바다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천곡을 지나 계속 올라가니 묵호역이 나왔다. 그리고 기차는 여기서 또 파워 지연운행의 극치를 보여 준다. 30분 정차! 제길! 이쯤 되니까 눈은 엄청나게 쌓였다. 먼저 묵호역 근방의 차는 이러한 초밥이 되었고

묵호역의 눈은 사람 허리 높이까지 쌓였다.

어찌 되었거나 이쯤 되니 자리가 많아 비어서, 그 동안 엔하위키라던가 이것저것 인터넷을 하면서 놀다가 닳은 갤s 배터리도 충전하고 했다. 그래서 결국 7시 40분경에 1시간 반 정도 늦게 강릉역에 도착했다! 눈이 너무 많이 쌓여서 횡단보도는 신호등으로 알아야 했고, 차도와 인도의 구별도 되지 않았다. 이대로 주변 찜질방에 들어가 1박. 잠이 잘 안 와서 찜질방 내에 비치된 적당한 만화책을 보는데, 타짜 1부와 럭키짱이 있는 것이 아닌가! 럭키짱은 군데군데 비어 있는 권들이 많아서 볼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타짜 1부는 4권만 빼고 다 있어서 잘 보고 잤다.


4

2월 13일.

찜질방에서 나와서 이제 양양, 속초를 거쳐 통일전망대까지 쭉 올라갈 시간이다. 주변의 적당한 시내버스 정류장을 찾아서 강릉터미널로 갔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렸는지 멀쩡히 포장된 도로가 비포장도로와 다를 게 없더라. 시외버스 터미널과 고속버스 터미널이 붙어 있더라.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서 거진이나 현내 쪽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했으나 마땅치 않아서 속초행 버스를 탔다. 무정차라서 적당히 동해고속도로를 타고 잘 가더라. 가면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역시 동해안은 서해안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계속해서 올라가더니 양양 근처에서 동해고속도로가 끝나고 다시 7번 국도다. 그대로 달리니 속초터미널에 도착하더라. 이 때가 대략 12시 30분이다. 이대로라면 통일전망대만 다녀오면 오늘 시간은 끝인 듯하다. 다른 곳은 그냥 차창 밖으로나 구경하는 정도가 되겠다. 그래도 그게 어디야.

이제 통일전망대에 가려면 속초시내버스 1번이나 1-1번으로 대진 종점까지 가야 한다. 조금 기다리더니 버스가 와서 탔다. 속초시내를 벗어나니 바로 얼어붙은 영랑호가 보였다.

그리하여 간성, 거진을 거치니 드디어 대진 종점이다. 여기서 내렸다. 그리고 계속 가니 옆으로 바다가 보인다! 땅은 희고 바다는 푸르다! 좋구나!


그렇게 몇 분 걸어가니 드디어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가 나왔다. 통일전망대는 차를 타고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차가 없는 나는 택시를 불러야 한다. 그런데 그 택시값이 왕복 4만원!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그런 건 아무래도 문제없다! 그대로 택시를 불렀다. 출입신고소에 있는 휴게소 내의 상점 상인들이 나 보고 이것저것 사라고 하더라. 상인들의 광고와 반응을 여기에 쓴다.

1)
상인 A : 기념품 사세요.
SIQ : 관심이 없네요.
상인 A : 가서 여자친구한테 선물도 하고 그래야죠.
SIQ : 여친이 없어요.

2)
상인 B : 이거 북한 술이에요. 사세요.
SIQ : 술을 못 마셔요. (나는 술을 전혀 못 마신다.)
상인 B : 지인분들께 선물해도 되잖아요.
SIQ : 돈이 부족해요......

3)
상인 C : 전투식량 한번 사보세요. 군대에 들어가는 거에요.
SIQ : 전투식량 하나하고 건빵 3봉지요.
상인 C : 10000원입니다.

이렇게 해서 전투식량 하나와 건빵 3봉지를 샀다. 군용 건빵은 고등학교를 공군기술고등학교로 갔던 사촌형 때문에 예전부터 많이 먹었고, 그 맛이 확실히 있었기 때문에 산 것이다. 전투식량은 일단 민간인들은 먹어 볼 기회가 드물잖아!

하여튼 이런 과정을 거쳐서 10여 분을 기다리니 택시 기사가 와서 나를 데리고 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가다가 보니 드디어 민통선이다.

헌병들이 지키면서 출입증 검사하고 하더라. 가면서 택시기사하고 이야기도 나누었는데, 주제는 여러 가지였다. 대강 아래와 같다.

- 어디서 왔고, 왜 왔는가
- 강원도 폭설
- 황종국 vs 윤승근(2008년에 1표차 난 그 선거의 후보들 말이다. 2010년에 윤승근 후보는 고성군수에 재도전해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았지만 또 떨어졌다.)

다른 건 그렇다치고 마지막 주제에 대한 기사님 말씀이 이랬다.

"윤승근씨는 현 군수가 다음 선거에 불출마하지 않는 이상 되기 힘들걸."

확실히 현 고성군수 황종국씨가 일을 잘 하기는 하는가 보다.

그렇게 해서 통일전망대에 도착해서 잠시 바다 쪽을 보니 이건 내가 본 바다 중 최고의 경치더라. 눈 덮인 해안과 겨울바다는 내가 봐 왔던 다른 어떤 바다 풍경보다도 아름다웠다. 또, 근처에서 엄청난 걸 하나 더 보았는데, 바로 아래와 같은 것이다.

아니, 어떻게 교회란 건 여기까지도 그 세를 뻗쳤냐!

그렇게 해서 전망대로 들어갔고, 전망대에서는 북한 관련 여러 가지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거기서 새로 알아낸 건 거의 없으나, 딱 하나 재미있는 사실을 알아냈는데 아래와 같은 것이다.

북한 화폐 내의 김일성 초상화는 접을 수 없다!

그리고 계속 올라가서 드디어 전망대. 드디어 북한을 직접 보았다. 아직 눈 덮인 땅과 바다가 어우러져 절경을 만들어 내는구나.

이렇게 해서 내가 이 나라 안에서 갈 수 있는 제일 북쪽의 장소를 찍었다. 이것으로 강원도 여행은 성공이다. 이렇게 북한 쪽을 보면서 한 30분 동안 있노라니 택시기사가 데리러 왔고, 다시 택시를 타고 대진종점까지 가서 통일전망대로 갈 때와 같은 교통편을 이용해서 통일전망대에서 속초를 거쳐 강릉까지 갔다. 강릉까지 가니 이제 저녁이라, 적당한 찜질방을 하나 잡아서 좀 놀다가 잠들었다. 다음 날 여행은 새벽 5시부터 시작이라, 잘못해서 오전 6시에 출발하는 강릉발 동대구행 열차를 놓치면 늠철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리하여 알람을 3개쯤 맞춰 놓고 잤다.


5

2월 14일.

일어나니 4시 50분, 아직 주위는 어둠으로 차 있지만 나는 길을 떠나야 한다. 이제 낯선 곳을 떠나서 익숙한 곳들을 들르는 차례다. 오늘 들를 익숙한 곳은 다름아닌 학교다. 어떻게든 6시 이전에 강릉역에 도착하여 열차를 탔고, 잠을 그리 많이 자지 못한 탓에 일단 잠들었다. 그 사이 열차는 꽤나 많은 거리를 가서 내가 일어난 건 대략 오전 9시가 좀 넘어서이다. 이미 기차는 강릉, 동해, 태백을 지나 봉화까지 와 있었다. 이곳이 한국에서 제일가는 벽지 BYC의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봉화군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미 영월, 정선, 태백에서의 사진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여기서는 사진을 찍을 가치를 못 느끼겠더라.

영주에 도착하기 직전에 잠시 생각하건대, 이 기차는 동대구까지 간다. 그리고 동대구에서 포항까지 가는 기차를 검색하니 갈아타기에 나쁘지는 않더라. 그래서 계획을 바꿔, 영주에서 갈아타지 말고 같은 구간을 다시 지나더라도 동대구까지 갔다가 동대구에서 포항 가는 기차를 타기로 했다. 왜 버스 안 타냐고? 포항에도 눈이 상당히 왔다는데 그 폭설을 뚫고 버스를 타고 싶은가?

어쨌거나 이렇게 생각하며 영주까지 왔다. 날이 흐리고 가시거리가 매우 짧아서 시가지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주변을 찍었다.

하여간 날이 흐리면 주변 풍경이 그리 좋지 못하다. 그렇다고 여기는 저기 동해나 강릉 쪽처럼 눈이 엄청나게 쌓인 것도 아니다. 어찌 되었거나 영주를 지나 이제 안동에 왔다. 그리고 안동댐을 지나쳐서

의성, 영천 등을 거쳐서 동대구까지 갔다. 동대구역에서 적당히 점심을 때우니 딱 시간이 되어 포항행 열차를 탔다. 눈이 상당히 내려서 열차가 지연될 정도더라. 그리고 가시거리는 그리 넓지 않아서 여전히 풍경은 좋지 않았다. 아래와 같았다.

우여곡절 끝에 포항에 도착하니 오후 3시 30분 정도다.

 

그 길로 학교에 가려고 하니 택시가 딱 한 대 있어서, 지곡 쪽으로 가는 다른 사람과 합승해서 결국 학교에 도착. 눈 덮인 78계단이 나를 반기고


다른 쪽 역시 올해 1월 3일의 풍경을 방불케 했다.

어쨌거나 이 길을 타고 바로 기숙사로 들어가니 학교에 남아 있는 방돌이가 있더라. 일단 적당히 짐을 풀고 동방에 올라가 빅토리아 2를 하며 잉여거리다가 다시 내려와서 적당히 마작팟을 모았다. 물론 이게 마작팟만 되는 건 아니고 다른 것도 얻기 위해 모인 것이다. 사실 2월 13일 밤에 아는 사람들에게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에 딸린 휴게소에서 산 전투식량을 같이 먹어 보지 않겠냐고 제안했고, 그 제안에 응한 사람들이 전투식량도 먹고 마작도 치러 모인 것이다. 물론 마작은 안 치고 전투식량만 먹기 위해 모인 사람도 2명 있었다.

이런 전투식량이다.

개봉하면 이런 식으로 나온다.

내용물을 꺼내 봤다. 된장국, 스프, 참기름 등이 있다.

기재된 조리법대로 하니 아래와 같이 완성되었다. 사실 처음 개봉시 뜯는 곳과 완성 후에 뜯는 곳이 다르지만, 완성 후에 뜯는 곳을 실수로 뜯지 않아서 지퍼가 그대로 남았다. 그래도 음식에는 이상 없다. 된장국은 그런 거 없어서 잘 되었다. 각각 밥과 된장국의 사진이다.


어떻게든 6명이서 모여서 잘 먹었으니 맛만 본 셈이지만, 적당히 먹을 만했다. 그리고 밤샘마작을 치니 2월 14일은 이대로 갔다.


6

2월 15일.

밤샘마작을 치고 나서 2시간쯤 잔 뒤 일어나니 8시가 좀 넘어 있다. 대충 씻고 짐을 다 챙긴 다음에 포항역으로 출발했다. 학교를 찍어서 학교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랑 잘 놀았으니, 이제 다음 목적지는 출발했던 곳, 집이다. 이렇게 하나의 루프가 완성되는 것이다. 날은 완전히 개어서 이제 맑아졌다. 학교를 나오면서 보이는 맑은 날의 설경은 흐린 날의 그것과는 또 다르더라.


후에 느낀 것이지만, 밤샘마작은 이 여행의 최대 패착이었다. 그것 때문에 6일째의 동해남부선 여행을 말아먹었으니 말이다. 물론 기차를 제때 못 탔다는 말은 아니다. 동해남부선에서 꼭 사진을 한 번씩 찍어야 할 곳에서 잠을 잤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울산 근처나 해운대 쪽 말이다. 어쨌거나 이런 실패 중에도 기차는 가서 결국 부전역에 도착. 그래도 경주에서 기차를 제대로 갈아타서 다행이다. 점심도 못 먹고 순천행 기차를 탔다. 하지만 여기서도 잠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 쭉 자다가 보니까 진주를 지나 있고, 하동과 광양을 거쳐 오후 5시 반쯤에 순천으로 도착하더라. 전라선 기차는 배차간격이 길고 버스는 배차간격이 짧으며, 기차로 여천역까지 가려면 순천에서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에 순천역 앞에서 여천행 시외버스를 타고 여천에 도착했다.

그리고 마중 나오신 부모님과 같이 집에 가서 저녁을 먹으니 드디어 살 것 같았다. 그리고 며칠만에 다시 내 노트북을 잡으니 금상첨화란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말한 것이라고 하겠다. 어쨌거나 집에서는 잘 먹고 이래저래 놀고 옷을 빤 후에 적당히 짐을 챙기고 잠들었다. 2월 16일에는 서울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짐은 더 늘어서, 집에 가져온 노트북과 각종 전자기기, 갈아입을 옷이 되었다. 노트북 가방과 다른 가방, 배낭 합쳐서 짐이 3개가 된 것이다.


7

2월 16일.

집에서 적당히 아침을 먹고 나오니 오전 8시. 8시 16분에 여천역에서 용산역으로 가는 새마을호 열차를 탔다. 하지만 이제 열차는 여행의 수단이 아니라 그냥 교통수단일 뿐이다. 전라선이나 대전 이북의 경부선은 기차를 타고 서울만 가면 들르는 곳들이니 관심이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익산까지 잠만 자다가 일어나니 콘센트가 있는 앞자리가 비어 있더라. 그래서 그쪽으로 가서 노트북 코드를 꽂고 노트북으로 빅토리아2를 하면서 시간을 때웠다. 적당히 하다 보니까 어느 사이에 서울에 와 있었다. 용산역에 도착하니 내일로 여행은 이렇게 끝났다.

하지만 7일 동안 이렇게 돌아다닌 끝에 이미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그대로 서울에서의 숙소인 동생 방까지 갔다. 지하철 몇 번 갈아타서 남부터미널역 6번 출구로 나가니 동생이 마중 나왔다. 그대로 동생 방에 들어가서 쉬고, 저녁때가 되니 나와서 밥 먹고 다시 방에 들어가 자니 이 날은 이걸로 끝이더라.

하지만 이 7일째가 여행으로서의 가치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이 7일째의 용산행 열차로 드디어 대한민국에서 기차가 없는 제주도를 제외한 8도를 모두 거쳐간 것이다. 다시 확인해 보자.

2월 10일 : 전라남도, 광주광역시, 전라북도, 충청남도
2월 11일 : 충청남도, 대전광역시
2월 12일 : 대전광역시, 충청남도, 충청북도, 강원도
2월 13일 : 강원도
2월 14일 : 강원도, 대구광역시, 경상북도
2월 15일 : 경상북도, 울산광역시, 부산광역시, 경상남도, 전라남도
2월 16일 : 전라남도, 전라북도, 충청남도, 대전광역시, 경기도, 서울특별시

광역시는 그리 넓은 광역자치단체가 아니니 제껴 두면 8도를 모두 지난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으로 지도로만 보던 지리정보를 눈으로 직접 본 것들이 확실히 많아졌다. 이 사실만으로도 이 여행은 대성공인 것이다! 이 계획을 성공시키고 나니 감개가 무량하더라.

내가 여기서 대여행기주의를 채택한다면 2월 28일까지의 행적이 전부 이 글에 들어가야겠지만, 나는 소여행기주의를 채택했기 때문에 여기까지가 나의 내일로 여행기이다. 하지만 이후의 행적도 글로 쓰기에 매우 좋은 것들이니, 17일부터 28일까지의 행적도 이러한 기록으로 적을 생각이다. 물론 사진은 이것만큼 많지는 않겠지.


덧글

  • 무진장인테리어 2012/09/20 13:01 # 삭제 답글

    유익한정보 얻어갑니다 안녕하세요 울산성안동에위치하고있는 울산종합무진장 인테리어입니다
    언제든지 방문하셔서 상담하시고 차한잔하시고 가세요^^
    감사합니다 전화번호052-246-8204
댓글 입력 영역


통계 위젯 (화이트)

05
14
518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