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공지사항 V3 공지

여기는 말 그대로의 자유구역입니다. 따라서 이런저런 내용의 글들이 여과 없이 올라옵니다. 
게시판에 대해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공지 : 공지사항입니다.
지식 : 공부하다 나온 글이 올라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유희'에 있는 글과 별 차이 없습니다.
유희 : 놀다가 나온 글이 올라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지식'에 있는 글과 별 차이 없습니다.
미분류 : 둘 중 어느 것도 아닌 쪽입니다. 어쩌면 이쪽이 가장 진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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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끔 신림마장에서 보입니다. 마작은 많이 치긴 했어도 잘 치지는 못합니다.


올라갈 글 예고

1. 본격 전남과학고 까는 글 - 최근의 사건을 기념하며 작성완료!
2. 삼국지9pk 도전스토리 공략 : 장수 토벌전
3. 울산의 역설 - AH6 4차선 도로상 시간지연의 신비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마인크래프트] 이젠 용암에서 오래 헤엄치는 것도 꿈이 아니다! 유희

마인크래프트 v1.0이 정식발매된 지도 벌써 꽤 지났다. The end가 생기고 enchant 시스템이 생기는 등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가장 큰 변화는 이거다.

버전 1.0이 되면서 플레이어의 공격력이 약해지고, 플레이어와 몹의 방어력이 전부 강해졌다. 이러한 변화는 아이템의 패치를 통해 이루어졌는데, 그 아이템 패치가 되면서 가장 크게 변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제목에도 썼지만

이제 용암에서 꽤 오랜 시간 헤엄쳐도 죽지 않는다!

믿기지 않겠다면 아래 동영상을 보자. 직접 찍은 동영상이다.


동영상에서도 설명했지만 다시 정리해 보자.

1. armor point가 10이 되면 갑옷으로 막을 수 있는 종류의 데미지는 꽤 큰 데미지(1)가 아니면 다 막을 수 있다.
2. 용암에서 헤엄칠 때 받는 데미지는 갑옷으로 완전히 막을 수 있다.
3. 2의 사실 때문에 armor point가 10인 채로 용암에서 헤엄치면 데미지를 받지 않는다.

그럼 전에는 왜 불가능했는가? 바로 이것이 패치 전후의 변화다.

Beta 1.8.1에서의 갑옷은 재료에 상관없이 새 갑옷의 armor point는 전부 같았고, 어느 재료로 만든 갑옷을 끼든 새 것만 모아서 세트로 끼면 armor point는 10이 되었다. 하지만 갑옷의 armor point가 내구도에 비례했기 때문에 다이아몬드 갑옷 풀 세트라도 내구도가 떨어지면 armor point가 10이 되지 않아서 저런 짓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갑옷의 armor point가 갑옷의 내구도에 비례하지 않는다. 갑옷의 armor point는 갑옷의 재료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그리고 다이아몬드로 만든 갑옷의 armor point는 동영상에서도 설명했지만 풀세트를 끼면 10이 된다. 따라서 다이아몬드 갑옷들 중 하나의 내구도가 다 닳기 전까지는 용암 속에서 무적이 되는 것이다.

이제 용암 속에서 헤엄치는 것은 현실이 되었다. 마인크래프트를 하면서 액체 속에서 헤엄치는 것을 좋아했다면 이제 용암을 정복할 차례다. 용암에서 헤엄치는 것을 마음껏 즐기도록 하자. 몹들은 들어오면 죽고 자기 캐릭터는 다이아몬드 갑옷의 내구도가 떨어지기 전까지는 무적이니 얼마나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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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1) 예를 들어 TNT 폭파에 의한 데미지는 armor point 10일 때에도 완전히 막히지 않는다. armor point가 10일 때 TNT에 바로 붙어서 있으면 체력이 하트 한칸만큼 닳는다.


마작 역들을 빠르게 외우는 방법 유희

사람들이 처음에는 퐁, 치 등으로 울어서 패를 만드는 것이 빠르고 좋으니까 이쪽을 선호하고, 따라서 선호하는 역 역시 쿠이탕, 역패 퐁, (울어서)또이또이, (울어서)일색 같은 것이다. 나와 자주 같이 치는 어떤 사람은 이렇게 되는 대로 울어서 나는 것을 공학이라고 하고, 거의 모든 판을 공학으로 점철시킨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멘젠으로 패를 만들어가는 쪽이 공격이든 수비든 점수의 기대값이 더 크다. 울어서 패를 만드는 경우에는 이렇게 하는 이유 중에 역을 잘 모르기 때문인 이유도 있는데, 이 역이라는 것들을 잘 외우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자.



1. 리치의 우월함에 대해 깨우친다.

이것은 울어서 패를 만드는 사람이 어쩌다가 울지도 못하고 역없는 텐파이가 되었을 때, 도라 하나쯤 섞여있는 형식 멘젠텐파이가 리치 걸고 일발로 도라쯔모에 뒷도라 하나 붙어서 하네만이 되는 것을 보면 자연히 리치의 우월함에 대해 깨우치게 된다. 리치라는 역은 1000점 공탁이라는 리스크가 있어서 처음 치는 사람들은 하기 매우 꺼려지는 역이다. 하지만 사실 리치를 걸어서 났을 때 얻을 수 있는 점수는 최소 1300점(자의 1판 40부)+공탁금이라는 점에서 실보다는 득이 더 많은 것이 리치이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8만 한정 삼색이고 5만인 경우는 역이 없는 텐파이이다. 도라는 하나 끼어 있고 5만(도라), 8만(우라도라) 대기이다.

이 형태를 울어서 만들었다면 1만 깡해서 영상개화라던가, 아니면 창깡을 노린다던가, 해저로월이나 하저로어를 노린다던가 하는, 즉 우연히 한판 나오는 역으로 화료한다던가, 아니면 8만 한정 삼색을 노리지 않는다면 절대로 화료할 수 없다. 무리하게 삼색을 노린다면 후리텐도 각오해야 하는 상황. 하지만 멘젠으로 만들었기에 리치라는 1판 역을 얻을 수 있었다. 이걸로 언제든지 화료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되었냐고? 일발쯔모했다.

도라쯔모라는 운도 있었지만 도라쯔모가 아닌 쪽은 우라도라에 삼색이 붙으니 더 크다. 론이면 어떻겠냐고? 론이어도 만관이고 8만 쪽은 하네만이다. 절대로 작은 점수가 아니다. 깡도라가 있었다는 것은 확실히 운이 좋았던 것. 어쨌거나 이렇게 역도 없었던 텐파이가 순식간에 만관, 하네만으로 되어버릴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바로 리치이다. 다시 말하겠다. 탕야오 1000점 탕야오도라1 2000점 발한판 1000점 또이또이 2600점 발혼일 3900점 이런 식으로 나다가, 역도 없는데 텐파이가 되어서 리치를 걸었는데 쯔모하고 우라맞고 해서 큰 점수가 되면 자연히 멘젠을 좋아하게 되고 리치를 좋아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 울어서 만들던 패를 멘젠으로 만들어본다.


위의 예로 리치가 얼마나 무서운 역인가에 대해 깨우쳤을 것이다. 리치마작에서 리치가 괜히 제일 많이 나오는 역이 아니다. 이제 울어서 만들던 것을 멘젠으로 만들어 보자. 예를 들어 울어서 탕야오 많이 할 것이다. 그거 멘젠으로 만들어보자. 그리고 대기를 최대한 좋게 해 보자. 커쯔보터 슌쯔가 더 뽑기 쉬우니까, 적당히 만들어가면 결국은 전부 중장패 슌쯔에 머리는 중장패요 대기는 양면대기인 게 나오지 않는가? 그게 바로 당핑이다. 탕야오에 '멘젠상태로 몸통 전부 슌쯔, 머리 역패 아님, 마지막 대기는 양면대기'라는 핑후의 조건까지 만족하게 되는 것이다. 이대로 리치 걸면 리치 탕야오 핑후 3판에 론이면 30부 쯔모면 한판 가산하고 20부, 도라 붙으면 판수도 늘어난다.

이렇게 해서 핑후를 깨우치게 되면 이제 탕야오에서 해방되게 된다. 굳이 탕야오를 넣어서 패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점점 사라져가기 시작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핑후를 베이스로 해서 패를 만들어나가는 경우가 많게 되는데, 읽히기 쉽지만 쯔모하기 좋다. 이런 식으로 멘젠쯔모도 익숙해지게 된다. 또 핑후와 복합될 수 있는 여러가지 역들을 생각해 보면, 같은 슌쯔가 2개 겹쳤을 때의 이페코 같은 1판역이나 삼색동순이나 일기통관 등의 멘젠 2판 / 울면 1판 식의 멘젠상태에서는 고득점이 되는 역들이 있다. 이런 것들이 다 같이 외워지게 되는 것이다.

그냥 간단히 말하면 리치만 제대로 알고 있어서 나기만 하면 나머지 역은 사람들이 세어 준다. 이러면서 여러 가지 역을 외우도록 하자. 이렇게 하면 패가 넓게 펴지는 역들은 거의 다 외울 수 있다. 가끔은 찬타나 준짱에 핑후가 붙어버리기도 하는 세상이다.


3. 그럼 다른 역들은?


역만 같은 것들은 딱 봐도 특이하고 기억에 남는 것들이라 빨리 외워지나 잘 보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면 남은 것이 커쯔 계열 역들이나 이쪽은 더 외우기 쉽다. 멘젠 안해도 외워지는 것들이다. 일단 또이또이를 베이스로 하자. 요구패로만 또이또이를 만들면 혼노두 또이또이요, 3종류의 같은 수의 수패 커쯔가 다 있으면 삼색동각이요, 역패 있으면 역패 붙고, 하나 울고 샤보로 쯔모했거나 하나 울고 단기로 론했거나 멘젠으로 또이또이 만들어서 샤보대기로 론했으면 삼암각, 깡 3번 쳤으면 삼깡쯔 이런 식이다.

사실 이런 커쯔계열 역도 리치를 거는 것이 외우기에 좋은 역이 있는데, 예를 들어 삼암각이다. 적당히 커쯔가 꽂히기는 하는데 완전히 또이또이 패는 아닌 패가 멘젠에서 암각 2개 꽂히고 슌쯔 하나에 샤보대기 텐파이가 되는 때가 많은데, 이 때 다른 역이 없으면 샤보대기로 리치를 걸면 쯔모했을 때 기분이 꽤나 좋다. 론으로 만든 커쯔는 암각이 아니므로 론이면 리치 한판으로 끝나나, 쯔모면 리치 쯔모 삼암각에, 암각은 하나당 최소 4부이므로 기본부 20부에 암각 3개 최소 12부, 다른 거 생각 안 해도 40부가 나오니 최소 40부 4판으로 만관이 된다.


4. 왜 역을 외울 때는 멘젠인가?


멘젠상태에서 판수가 높고 가치가 있는 역들이 많기 때문이다. 핑후나 이페코같은 멘젠한정 역은 그렇다치고, 삼색동순이나 일기통관같이 멘젠일 때 빛을 발하는 역들이 많다. 나 같은 경우도 위와 같은 방식으로 다양한 역을 외우게 되었다. 2009년 9월에 마작을 배운 후 처음 두 달 동안은 정말로 위에 쓰여진 '공학'에 해당하는 역들만 하다가, 2009년 11월쯤에 아무리 봐도 역 없는 도라1 텐파이가 되어서 1000점 잃는 셈 치고 리치를 걸었는데 이게 웬걸 하가가 일발에 론패를 내고 리치일발도라우라 만관을 맞아버리는 것이 아닌가! 당시 만관 비슷한 점수까지라도 올라가려면 정말 운 좋아야 되는 탕야오 도라3 정도를 해야 했으니, 리치라는 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아버린 것이다. 이후로 멘젠율이 굉장히 많이 올라가고, 역도 이 사건 이후 한 달 이내에 다 외우게 되었다.


5. 역을 외운 뒤

역들에 대해 완벽히 깨우치고 나면 이제 패가 텐파이가 되면 역이 있는지 없는지 확실히 알게 된다. 그리고 멘젠쯔모가 생각보다 꽤 많이 나오는 역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렇다면 그 때가 상황을 봐서 야미텐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시기이다. 이제 당신이 역을 몰라서 쵼보를 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부산 자파장 레이드 후기 유희

최근에 부산 서면역 근처에 자파장 부산점이 개업했다. 신림 까페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소식에 따르면 처음에는 11월 11일에 개업한다고 해서 지스타 가는 김에 같이 가려고 했으나 개업이 두번 연기되어서 결국 25일 개업이 되었다. 하지만 인터넷을 조금 두들겨 보니 25일에 부산마작동호회에서 밤샘한다는 사람들만 스무명 가까이 된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에, 25일에 가는 건 포기했다.

그리고 26일이 되었다. 정확히 언제 개업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그냥 안전하게 오후 6시에 맞춰서 들어가기로 했다. 레이드 참가자는 나와 아는 후배 한명 해서 총 두명. 3시에 만나서 3시 반 버스로 포항시외버스터미널을 출발해서 노포동에 도착하니 4시 50분쯤.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서면역까지 가고 그 주변에서 자파장을 발견하니 그 때가 오후 5시 45분이었다.

바로 앞의 GS25에서 간단히 저녁을 때우고 자파장에 들어가니 오후 6시 5분쯤. 얼마 안 있어 사람이 모여서 마작을 치기 시작했다. 마작은 그냥저냥 된 편이어서 4등을 한번 할 때 1,2,3등을 각각 3~4번쯤 했다. 그 후 결국 밤샘을 하고 오늘 아침 9시까지 놀다가 부전역에서 기차 타고 효자역에서 내려서 학교로 돌아왔다.

이제 거기서 보고 듣고 한 것들을 정리한다.

1. 한 반장이 끝나도 웬만하면 사람을 새로 섞지 않는다. 첫 친만 계속 하가로 넘어가고 자리는 고정되어서 구성원 중 한 명 이상이 빠지지 않는 한 고정된 구성원으로 게임이 계속된다.

2. 백패 중 하나에 분홍색 사인펜으로 약간 칠해놓은 뒤 테이프로 붙여놓은 것이 있었다. 시로포치와 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추정되었는데,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아직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더라. 발패 역시 그 중 하나에 분홍색 사인펜으로 약간 칠해놓은 뒤 테이프로 붙여놓은 것이 있었는데, 이것도 아직은 아무것도 아니다.

3. 아직 일종의 가개업상태라 기록시스템이라던가 룰이라던가 하는 것이 아직 확실히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들은 바로는 서울 자파장에는 칩 같은 것도 있어서 이래저래 오가는 것 같던데, 여기서는 아직까지는 그런 것이 없다. 부산마작동호회 분들이 굉장히 많던데, 아마 그 동호회의 모임장소로 이용될 확률이 높아 보이고, 그 동호회의 기록이 자파장에서의 대국을 가지고 이루어질 것 같긴 하나, 확실한 건 아니다.

4. 전동작탁은 11월 27일 현재 4개의 전동작탁이 가동중이고, 1대는 아직 조립되지 않았다. 전동작탁의 중앙에는 LCD 화면이 하나 있어서 각 사람의 점수를 표시해주고 주사위도 거기서 굴러가고 연장봉 따로 올릴 필요 없이 옆의 버튼만 누르면 연장봉이 알아서 화면에 뜬다. 약간은 온라인 마작하는 기분이 든다고나 할까?

5. 가게는 뭔가 가정집같은 분위기다. 주방도 있고, 화장실도 있고, 방 두개에 거실 있고. 그러니까 가정집을 마장으로 만들어놓은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좋다. 적어도 자파장의 거실 부분은 흡연이 허용된다. 덕분에 같이 갔던 후배나 나와 같이 담배연기를 매우 싫어하는 사람들은 콜록콜록하면서 힘들게 마작을 쳐야 했다. 가끔씩 물수건이 제공되니 담배연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이 물수건을 담배연기를 막는 용도로 쓰도록 하자.

지금부터 트위터로 사진을 옮긴다!
이곳이 자파장에 들어오면 보이는 흡연가능한 전동작탁 3대다.


여기에도 작탁이 있다. 하나는 조립중이다.


구석에는 이벤트 상품으로 준비해놓은 피규어들이 쌓여 있다. 저 중에 히라사와 유이 피규어가 하나 있었는데, 밑의 비로그인 asiriane씨(나와 같이 레이드 뛰었다는 그분)가 받아갔다.

..
한쪽에는 앉아서 쉴 수 있는 곳도 마련되어 있다.

이외에 화장실이 하나 있고 나머지 방 하나는 사장님 침실이다.

6. 부산 자파장은 24시간 운영되지는 않는 모양이다. 이 점이 아쉬웠지만 어차피 밤샘 한번 하면 체력이 거의 고갈되는 나로서는 별 상관없다.

특징적인 부분은 이 정도이다.


마지막으로 자파장을 나오면서 찍은, 밖에서 본 자파장 사진으로 이 글을 끝낸다.


본격 전남과학고 까는 글

최근에 잉여거리다가 전남과학고 동문회 싸이월드 클럽을 들어가게 되었다. 내가 전남과학고를 졸업한 지도 어느 새 3년 반이 넘게 지났는데, 선후배간의 관계 관련된 일로 무언가 일이 터진 모양이다.

아래 글을 보자. 어떤 전남과학고 18기가 올린 글이다.

(자신을 채찍질해 주는 사람은 선생님들로 충분하다. 선배가 무슨 벼슬이냐? 자기들 앞가림이나 잘 하시지?)

솔직히 제3자의 입장으로 보면 누가 잘못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심하게 병신같다. 그러니까 저 글을 인정하게 된다면

'너희들이 잘못했으니 선배가 선배라고 해서 너희들 탄압하는 것 전체를 순순히 인정해라'

라는 주장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앞쪽은 누가 맞는지 잘 모르겠지만 뒷쪽은 틀려먹은 것이 확실하다.

너무 앞서나간 주장 아니냐고? 바로 다음에 올라온 같은 주제, 비슷한 맥락의 글의 댓글 중 하나를 캡쳐했다.

지금부터 저기 저 빨간 밑줄 쳐진 부분을 유심히 보도록 하자. 저 따위 말이 공공연하게 오가고 있다는 것이 내가 오늘 이 글을 교내 텔넷 BBS에서 꺼내서 블로그로 옮긴 이유다.

이렇게 전남과학고에서는 선배라는 이름으로 후배들을 탄압하는 경직된 수직관계가 아직까지도 이어져 내려온다. 이것은 내가 전남과학고에 다니고 있었을 때도 여전했는데, 지금도 그 병신같은 수직관계가 어디 안 가고 있는 모양이다. 아무렴 그런 병신같은 게 노력 없이 쉽게 고쳐지겠어?

아래 글은 2010년 3월 22일 ~ 23일에 내가 교내 텔넷 BBS에 올린 글에 약간의 수정을 가한 것이다. 이제 이 글을 읽고 전남과학고의 병신같은 악습들과 그 추종자들을 마음껏 까도록 하자.

 

1. 프롤로그

과고 시절 이야기를 하나 꺼내보도록 하자.

그런데 이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중학교 때까지의 이야기를 약간 해야겠다.

내가 중학교 때, 선생님들은 아직 어른도 아닌 선배들에게 인사하고 존댓말로 대하는 것은 뻘짓이라고 가르쳤다. 실제로 중학교 때 선배들에게 인사하고 존댓말로 대하는 족속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전부 일진회라 불리는 학교 내 폭력서클에 가담한 작자들뿐이었다. 그렇다. 가만 생각해 보면 저것은 조폭들 위계질서 잡는 거랑 다를 게 하나도 없는 것이다.

실제로 나는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나보다 대략 6~7살 위의 사람에게까지는 반말로 대했다. 단 나이가 나보다 위면 형, 누나 정도의 칭호는 항상 붙여 주었고, 예삿말은 썼어도 낮춤말은 쓰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중에는 나중에 전남과학고 14기(내가 15기이다.)가 되는 사람들도 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계속해도 아무 문제없었다.


2. 컬쳐쇼크와 린치

그런데 이 상태에서 전남과학고에 합격하고, 입학을 하니 컬쳐쇼크가 따로 없더라. 나는 입학 첫날 밤에 여기가 무슨 조폭 양성소인가 했다.

무슨 놈의 선배란 작자들이 신입생 입학 첫날부터 신입생들을 세워 놓고 1시간 동안 기합을 주지 않나. 선배들한테는 꼬박꼬박 인사하라고 시키질 않나. 어차피 작은 학교 안에서 서로 다 알고 지내야 되지 않겠냐고? 아놔, 이 인간들은 거리라는 것을 모르나? 다른 사람 알고 모르고는 자신이 결정할 일이지 남이 강요할 일이 절대 아닌데 말이다. 뭐 자기들한테 인사 안 한다고, 자기들한테 존댓말 안 쓴다고 자기들이 피해를 받나?

어떻게 생각해 봐도 선배라는 작자들이(그것도 10년 이상의 대선배도 아닌(1) 겨우 1~2년 선배들이) 후배들한테 인사를 강요하고 존댓말을 강요한다는 것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뻘짓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좀 빨리 들어온 것이 벼슬이라고 한다면 조폭이랑 다를 것이 없다. 그래서 거기가 조폭 양성소와 다를 게 뭐가 있나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처음 며칠간 아래와 같은 행동방식으로 행동했다.

i) 원래 알던 선배 : 원래 하던 대로 대한다.
ii) 동기인 게 확실한 사람들 : 당연히 반말. 절반쯤은 낮춤말.
iii) 그 외 : 아예 모른 체 한다.

이렇게 했더니 2006년 3월 5일 밤에 소위 자치부 소속이라 하는 선배들이 나를 불러서 린치를 가하더라.(다른 몇몇도 같이 불려서 당했지만, 나만큼 당한 것은 아니었다.) 아오 이 안구에 USB 메모리를 496번쯤 쳐박고 그 구멍에 송곳을 넣어서 대뇌를 휘저어도 모자랄 미친놈들, 내 그 중 몇몇은 지금도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니, 누군지 알고 싶다면 개인적으로 찔러라. 이름 정도는 가르쳐줄 수 있다.

더 웃긴 것은, 그 지랄을 하는 사람들, 또는 내가 린치를 당하게 만든 사람들 중에 원래 알고 지내던 선배도 끼어 있었다는 점이다. 사람이 선배 소리 한번 듣자고 어떻게 그렇게 변할 수가 있나. 온몸이 다 떨렸다. 어찌 되었거나, 이후 나는 이 일 때문에 모르는 사람을 대하는 데에 있어서 엄청난 트라우마가 생겨 버렸다.


3. 전통이라는 이름의 악습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말하자면, 그 병신들은 그것을 '전통'이라고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전통의 뜻도 뭐도 모르는 놈들아, 그건 전통이 아니라 악습이라 하는 거다! 마치 고인 물마냥 창조적으로 시대에 맞게 변화하는 일 따위 하나도 없는 그딴 게 무슨 전통이냐!

그런데, 그게 전통이라 불리게 된 이유는 다른 데서 온 게 아니고, 거기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거기에 동의하게 되는 과정은 아래와 같다.

i) 선배들이 시킨다. 부당하게 생각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한다.
ii) 2학년이 된다. 후배들이 들어온다.
iii) 나만 당하면 억울하다. 선배를 어찌할 수는 없으니, 후배 너희들도 당해라.

이렇게 해서 내가 입학할 때쯤 모든 선배가 그 전통이라 불리는 악습들에 동의하고 있었던 것이고, 1년 뒤에 동기들이 그러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강요당했던 전통이라 불리는 악습들에는 선배에게 존댓말 쓰기와 선배에게 꼬박꼬박 인사하기 같은 것도 있었지만, 시차제라는 것도 있었다. 이것도 상당히 악질이었다.

시차제라고 하면 뭔지 딱 하고 생각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시차제의 기본적인 정의는 식사시에 집단간의 서열을 둬서 집단의 서열이 개인의 서열보다 우선하는 제도를 말한다.

예를 들어 집단 A={A1,A2},B={B1,B2,B3},C={C1} 간의 밥 먹는 순서가 A>B>C이고, 아래와 같은 순서로 식당에 도착했다고 하자.

C1>A1>B2>B3>B1>A2

그러면 밥 먹는 순서는 A1>A2>B2>B3>B1>C1이 되게 되는 제도이다.

시차제에서 빠지면 안 되는 것은 각 집단간의 서열이 평등하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1주일마다 A>B>C, B>C>A, C>A>B 이렇게 순서대로 계속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남과학고는 이러지 않았다. 다시 말해 서열 고정 시차제였다.

3학년>2학년>1학년

내가 입학할 당시 전남과학고 2,3학년을 합치면 100명이 넘었으므로, 1학년이 아무리 빨리 왔다 하더라도 순위는 절반보다 뒤가 되는 것이다. 느릿느릿 온 2,3학년들이 부지런하게 서둘러서 빨리 온 1학년들보다 밥을 더 빨리 먹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문제는 맛있는 반찬은 항상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1학년들 중 절반 이상은 맛있는 반찬이 다 떨어져서 먹지 못한다. 이 악습이 계속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도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2,3학년들은 빨리 공부해야 한다는 논리를 들었지만 2,3학년들이 어딜 봐서 1학년보다 열심히 공부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4. 변화의 물결

이렇게, 전남과학고에 있었던 '전통'이라고 불리는 악습들은 어디 하나 제대로 된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 악습들을 지키려고 하는 대다수 선배들에 의해서, 나는 자치부라 불리는 작자들에게 린치까지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나는 더 이상 그런 린치를 견뎌낼 만한 힘이 없었다. 그렇다고 과고를 떠나서 일반고(국표마장의 1점역 일반고 - 리치마작에서의 이페코 정도의 역이다 - 와 한자까지 같지만 그거랑은 다르다! 일반계 고등학교를 뜻하는 소리이다.)를 다닌다던가 검정고시를 친다던가 할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일단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엄청나게 힘들고, 일반고는 분위기도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기 때문에, 일단 14기의 상당수가 조기졸업을 해서 학교를 떠날 때까지 그저 기다리기만 했다. 악습에 의한 부당한 피해는 수도 없이 많이 받았다. 그 중에는 인사나 존댓말을 받을 이유가 아무것도 없는 선배들에게 강제로 인사해야만 하고 강제로 존댓말을 써야만 하는 데에서 오는 상처가 제일 컸고, 시차제 때문에 부당하게 아주 가끔 나오는 맛있는 음식이 다 털리는 걸 보고만 있어야 하는 데서 오는 상처도 그에 버금갔다.

그렇게 린치를 당한 이후, 나는 어떤 선배도 기본적으로는 멀리했다. 이미 이런 악습을 긍정한 이상 어떤 선배도 잠재적인 가해자이므로, 적대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핍박을 받으며 살다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2007년 3월. 이 때부터 전남과학고는 큰 변화의 물결에 직면하게 되었다.

2007년 1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 일이 터졌다. 앞에 썼던 기합을 받다가 16기 중 몇 명이 쓰러진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은 16기의 부모님들 중 몇몇을 굉장히 화나게 했고, 인사나 존댓말 강요, 시차제나 기합을 주는 것 등의 악습들이 전부 사라질 뻔했다.


5. 집단병크

하지만 여기서 대다수 전남과학고 학생들의 희대의 병크가 터지게 된다.

기합을 주는 것은 정말로 그 후 빈도가 확 줄었다. 그거 하나는 좋았는데, 다른 것은 어떻게 되었나 보면 아래와 같다.

인사나 존댓말을 강요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일부 몰지각한 학부모의 자기 자식 감싸기로 치부되어서 학생들이 공공연히 그런 학부모들을 욕하게 되자, 학교에서 꼬리를 내려 버렸다. 아무리 자기 부모 아니라지만 틀린 말 한 것도 아닌데 자기들한테 손해가 된다고 지랄 염병을 해대는 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최악의 병크는 '시차제 폐지 반대 서명운동 사건'이었다.

시차제가 폐지될 조짐이 보이자, 동기들은 자신들이 1학년 때 그렇게 피해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시차제 폐지 반대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서명운동도 서명자가 그리 많지 않으면 빛을 못 보겠지만, 문제는

15기 총 69명 중에서 나를 뺀 68명이 모두 서명했다.

와 같은 사실이다.

14기는 말할 것도 없고, 반 강요인지는 모르겠지만 16기에서도 1~2명인가 빼고 전부 서명했다고 알고 있다.

서명한 것도 병크는 병크이지만, 더욱 큰 병크는 나에게 서명을 하라고 강요를 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선배라는 작자들이 동기들에게 시차제를 강요했을 때와 같은 이유. 하지만, 속의 이유는 우리도 당했으니 우리 역시 그 혜택을 받아 보자는 것이겠지만,

그게 정당화되려면 그 희생양은 후배가 아닌 선배가 되어야 했다.

전남과학고의 시차제는 엄연히 선배가 후배에게 일방적인 피해를 주는 행위이다. 15기가 굳이 혜택을 받아 보자고 시차제를 유지하려고 했으면, 16기를 희생양으로 삼아 뒤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14기를 희생양으로 삼아 뒤로 보내고 15,16기는 시차제를 적용하지 않는 식의 시차제로 바꾸어야 했다. 피해를 준 사람에게 복수를 해야지, 피해도 안 준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복수가 끝나면 시차제 같은 건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다. 없는 게 이상하다면, 간단한 예를 들어서, 우리 학교 식당에 시차제가 있던가? 없지 않은가. 없으니까 얼마나 보기 좋은가.

아무튼 서명하는 것을 강요당했을 때의 논쟁이 대강 아래와 같았다.

다른 15기 : 왜 서명을 안 하는 건데? 어차피 1학년들은 놀잖아. 우리나 14기 선배들은 한창 공부해야 한다고. 대학 가야지.

SIQ : 왜 피해도 안 준 사람에게 피해를 주려 하지? 하려면 이제 3학년이 제일 뒤로 가야 하는 거 아닌가?

다른 15기 : 그러면 너 혼자 시차제 하지 마라. 왜 다른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주려 하는데? 그런데 할 수나 있을까?

SIQ : 그건 두고 봐야 알지. 그런데 가해를 못 하게 하는 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닌데.

다른 15기 : (그냥 간다)

결국 이 블록버스터급 집단병크로 인해서 시차제도 그대로 유지되는 것으로 결정되어 버렸고, 그놈들을 도저히 구제할 길이 없다고 생각한 나는 그 후 16기를 희생양으로 삼는 시차제를 거부했다. 그것이 언제까지 계속되었냐고?

기숙사를 나갈 때까지 대략 9.5개월간. 그 기간 동안 한 번도 16기를 희생양으로 삼는 시차제를 수용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위의 말이 어떤 뜻인가 하면 이런 뜻이다.

i) 다른 14,15기들이 16기 앞에 서는 건 그러려니 한다.
ii) 나는 그러지 않는다.

그러니까 내가 밥을 빨리 먹으려면 어떤 16기보다도 더 빨리 오면 되는 것이다. 당시 내가 속해 있던 반은 식당과 상당히 가까웠으므로 이것의 성공률은 그런대로 되었다. 만약 그렇게 못 하면, 그냥 앞에 선 16기들 뒤에 섰다. 그리고 내 뒤에는 또 16기들이 서게 된다.

이 짓거리를 시작한 지 한 달쯤 되니까 어떤 15기는 진짜 지독하다는 소리도 하고 그러더라. 그런 소리 하려면 좀 따라하던가. 또 다른 사람들은 왜 꼭 선후배 관계를 가해와 피해, 그리고 복수의 관계로 보냐고 까더라. 그 머리에 똥만 들어차 있는 병신은 진짜로 그게 왜인지 모를까? 딱 봐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하고 그렇다고 선배가 후배에게 해 주는 게 있나. 아니 있어도 그렇게 피해를 주는 게 정당화되나. 그러니까 징벌의 의미에서라도 복수가 필요하지 않나.


6. 에필로그

아무튼 그렇게 여러 악습의 폐지 시도가 유야무야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전남과학고를 졸업하게 되었고, 악습들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리고 대학교에 입학했다. 천국이 따로 없었다. 인사를 안 해도 그저 모르는 사람 취급이고, 시차제도 없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얻었던 트라우마는 한동안 내가 인간관계를 넓히는 데 아주 큰 장애가 되었다.

본인을 오프라인에서 아는 사람들 중 2008년 초창기의 본인을 대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대하기가 엄청나게 어려워져서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조졸이라서 그런지 같은 학번에도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뿐이었고, 나에게는 이 사람들에게 전남과학고 선배들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애당초 그것 때문에 2년 동안 RC에서의 룸메와 거의 모르는 상태로 지냈고(그쪽은 현역이다) 동아리 모임 등에서 사람들에게 쉽게 말을 걸지 못했던 것이다. 특히 자신을 높여 부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그나마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 되었다 보니 그나마 나아진 것이, 후배들이라도 잘 모른다면 존댓말로 대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버렸고, 또 09 후배들 중에서는 나랑 동갑인 사람들이 대다수라 존댓말이라는 것이 꼭 선배에게 일방적으로 당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게 된 것이다. 어른들간의 쌍방으로 성립하는 예의 지키기라 할까. 인사 역시 비슷하다.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후배들이라도 같이 인사를 해 준다.

 


그래서 1,2 합쳐서 내용요약이다.

1. 전남과학고에는 선배에게 인사 강요, 존댓말 강요, 시차제, 강제 기합 등의 악습들이 전통이랍시고 이어져 내려온다.

2. 나는 처음에 저런 것들을 거부하다가 자치부라 하는 사람들에게 린치를 당했다.

3. 2007년에 일부 학부모와 선생님들이 악습을 없애는 개혁을 하려 하자 당시 2,3학년 주도로 학생들이 들고일어나서 악습을 유지시켰다.

4. 그것 때문에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대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졌고, 지금도 약간 남아 있다.

 

주석

(1) 사실 이쪽 역시 존댓말이라는 것이 '선배'라는 관점에서 허용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경우는 아버지뻘 되는 사람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과 같은 쪽으로 봐야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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